경우수맥학술연구회


  김경우(2010-11-19 11:59:47, Hit : 2434, Vote :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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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서기-2

면서기-2

  면서기는 바빴다  영농지도를 위해 거의 매일같이 담당마을로 출장을 다녔고 또한 마을리장들은 대부분이 농사일을 제대로 하질 못했다 그래서 리장을 몇 년 하면 대부분이 농가부채가 늘어 난다

  어떤 리장은 농사일을 하다가도 일이 하기 싫어 면서기가 오지 않나하고 두리 번 거리다가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면서기인가 고개를 돌리다가 면서기가 보이면 손 사례를 치며 반가워 어-이! 김 서기 왔나하고 얼른 하던 일을 멈추고 쫓아오곤 했다 그래서 사실 시골마을에서 리장을 하는 것은 농사를 포기하는 거와 같다

  1년 농사를 지어 매상을 댈 때에는 농 네 잔치가 벌어질 정도이고 우리 면 서기는 농산물 검사원과 함께 등수를 메긴다 검사원이 벼를 찔러 1등하면 1등을 치고 2등하면 2등을 쳐야 하는데 나는 나의 담당 마을 매상 시에는 검사원이 3등하면 검사원 몰래 3등하며 복창을 하고는 2등을 찍고 2등하면 2등 복창을 하고 1등을 찍었다

  그러다가 검사원에게 들키면 에궁 내가 잘못 찍었네 하고 다시 찍는 척 하다가 또 다시 그렇게 하고 하니 마을 주민들과 리장님은 눈을 찡긋하며 우리 김 서기 최고다 하며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마을주민들과 한 마음이 되어 모든 영농 지도를 할 때 일 하기가 훨씬 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심경(가을철 논 깊이갈이), 퇴비증산, 보온절충못자리 설치 등  다른 마을은 잘 되지 않아도 나의 담당 마을을 잘 되곤 하였다  당시에는 식량증산 목적으로 통일벼 식재를 지도 하였지만 밥 맛이 없고 벼알이 잘 떨어져서 농민들이 많이 기피를 하던 그런 시절 이었다

  그러다가 봄철 볍씨 담그기부터 시작하여 못자리 설치부터 우리는 보온절충 못자리를 하도록 지도를 많이 다녔는데 기계면 화봉리에 갔더니 전부가 물 못자리다  그래서 당시 산업계장과 우리 산업계직원들이 머리를 짜내어 낸 것이 소깝 추기(소나무 단속)이다

  옛날 시골에 살았다면 다들 잘 아시겠지만 그 당시 농민들이 제일 많이 겪는 고통이 소갑 추기와 밀주 단속이 아닌가 우리 산업계직원들은 본의 아니게 마을 집집을 다 뒤지며 소깝추기를 시작하였고 마을은 벌집 쑤신 듯 어수선 하게 만들어 놓고는 저녁에 리장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틀 기간을 줄 테니 이틀 동안 물 못자리를 보온절충 못자리로 다 바꾸면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만약 그대로 물못자리를 고집하면 전부 벌금을 매기고 소나무를 많이 한 사람 몇 명은 구속을 할 테니 리장님이 저녁에 동회를 열어 결정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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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면 대부분 물못자리가 보온절충못자리로 바뀌게 되고 또한 농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통일벼를 심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까지 하면서 식량증산을 위하여 헌신하고 노력하였기에 지금과 같이 쌀이 남아도는 세상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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